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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워크/글 2025. 4. 27. 23:54

    발을 구르는 소리만 들려.

     

    뚜벅뚜벅, 아니 저벅저벅, 아니.... 이따금 헛발 디뎌 애먼 돌 비비는 스치는 소리나 나고....

     

    나는 그렇게 걸어서 색이 다 퍼렇게 바래버린 하늘 아래에서 외로운 벤치에 몸을 내려놓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네.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올려 주위를 살펴도 네 발로 걸어다니는 인간 조차, 없다.

     

    아... 고독해.

     

    마음이, 감정이 참 물에 젖어 찢어져버린 신문 뭉치같았다.

     

    여자를 생각했다. 한 여자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나 나타나라. 아무나 나타나라고, 생각했다.

     

    왼쪽으로부터 저벅저벅 나타난 것은 어떤 남자였다.

     

    수심깊은 눈알빛에, 절뚝절뚝절레절레거리는 몸짓을 나는 그냥 지켜보았다.

     

    자세히 보니까, 어라. 내가 액정너머에서만 보던 그 남자잖아.

     

    그러고 보니, 언제 이곳 근처로 잠시 여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내 얼굴이 옅게 화색했다.

     

    그러나 이 순간 나와 달리, 남자에겐 화면에서 보던 발랄한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함을 알아차린 순간 공기는 전보다 더욱 냉랭해졌다.

     

    무슨일일까하고 곁눈질로 그를 살폈다. 자동으로 숨을 죽이게 되었다. 지금 내 정면엔 남자가 서있었고

     

    위에선 공기가 무섭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 때가 어둠이 틈사이로 꽤 비집어 나와 검게 번지고 하늘은 그쪽에서부터 무거운 파랑을 추욱 늘어뜨리던 시간이었다.

     

    아, 쓸쓸하다.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말을 걸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남자는 나의 시야에서 한발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그저 자기 뒤통수를 보여주며 오늘 하루에도 저물어가는 태양의 희미한 흔적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일어섰다.

     

    몸이 흔들거렸다. 이정도는 버틸만 해.

     

    내 시야 안의 남자가 점점 커졌다.

     

    점점 더욱 더 가까워졌다.

     

    저기....

     

    나의 엉성한 내뱉음에 그가 망설임도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의 유일하게 고왔던 부분인 눈매가 내 마음 어느 부위를 후벼파는듯했다.

     

    그러함을 알아채니 숨을 쉬기 힘들었다.

     

    아냐, 아냐. 나는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팬이라고하니, 남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 아... 그냥 산책하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그래 그게 다예요. 그러다가 보게되었죠."

     

     " 절요."

     

     " 네. 맞아요.... 그리고... 그러면,"

     

    남자는 무얼하는 중이었냐, 물으려던 생각이었다.

     

    남자의 눈은 아까와 같이 하늘에 옅게 펼쳐진 태양의 꼬리를 물고 늘어져가는 중이었다.

     

     " 해방감을.... 좀 느끼려고요."

     

     " 고독함도 느끼고요."

     

     " 맞아요.... 아닌가, 사실 외로운 걸 견디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남자의 말끝이 약간 흔들리며 가라앉았다.

     

    이젠 조금은 나를 진지하게 인식할까.

     

     " 지금 바쁘신가요?"

     

    남자는 이번엔 나를 꽤 오래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 한가로울때가 있어야죠. 그게 오늘이고요."

     

    태양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흔적들까지 전부 지워지자, 그의 얼굴이 시커먼 검댕으로 뒤덮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다 말았다. 오히려 이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 저,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혹시 고민상담좀 해도 될까요? 제가 늘 지켜본 사람의 입장으로서, 당신은 똑똑한사람 같으니...."

     

    남자가 사뭇 놀란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말해봐요."

     

    시선을 떨어트리니 괜히 하랄거리는 나의 머리칼이 거슬려, 손으로 느리게 넘겼다.

     

     " 그러니까.... 제가 꽤나 친했던 여자애가 있었어요. 음, 가족보다는 멀고 친구보다는 가까운 사이였어요.

     

     아주 친했죠. 그 애랑은 콜라를 같이 마실 때에도 한 빨대를 썼어요. 그것보다 나와 그의 친밀도를 더 잘 설명해줄 다른 것은 없어요."

     

    올려다 본 남자의 표정은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나를 확실히 응시하는 중이었다.

     

    좋은 징조일 것이다. 아마.

     

     " 저는 그와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길 원했죠."

     

    잠시 숨을 고르며 하늘을 살피니 그것은 아직 완벽한 암흑은 아니고, 아직 푸르름이라는 애상적인 희망이 보일 뿐.

     

     " 그래서, 실패했나요?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이 당신을 부담스러워 했다던가."

     

    남자는 말 끝을 흐렸다. 나는 새삼스러움에 약간 미소를 지었지만 마저 말을 이었다.

     

     " 맞아요. 저 혼자서 그에게 집착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둘이 떨어져있어요. 그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일이 아주 오래전 같아요."

     

    남자는 탄식했다. 어째 미지근해진 온도에 나는 소탈하게 웃을뿐이었다.

     

    그가 앞의 드넓은 공원과 여기의 어두운 외길 사이를 길게 걸친 하얀 콘크리트 울타리에 슬그머니 몸을 기댔다.

     

     " 저 같으면요, 저는 애초에 집착하지를 않아요. 그냥 좋아하는 만큼 그 순간 표현하는 거죠. 그 이후 상대방의 시간엔 간섭하지 않아요."

     

     " 그래야 하는 게 맞아요."

     

     " 알면서도 어렵죠."

     

    그의 말을 상기하자 내 흐릿한 시야에 여자가 아른거렸다.

     

    알 수 없이 눈물이 고였다.

     

    남자에게는 들키지 않을 정도로.

     

    더 이상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었다. 나는 화제를 돌려 이번에는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 아까 표정이 어두워 보이던데, 왜 그런지 물어봐도 될까요?"

     

    남자의 얼굴이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처럼 수심 짙게 변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림자는 금방 사라졌지만.

     

     " 사실, 저도 사람때문에요."

     

     내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빈 동공 같은 부분은 보라색 빛을 띄었다.

     

     " 좀 앉아서 이야기 할까요, 아니면 같이 좀 걸을까요?"

     

     " 걸어요."

     

     

     

    해질녘보다 조금 더 지나버린 시간의 수중같은 몽환스러움도, 이제 가신지 오래였다. 나와 남자는 이제 아주 현실적인 검정과 하양의 어느 길을 걷고있을 뿐이었다.

     

    남자의 발걸음보다 내가 좀 더 늦게 걷고, 남자는 그런 내 걸음보다 더 늦게 발을 딛었다.

     

    걷다보니 편의점이 나왔지만 그냥 눈길만 주고 지나쳤다.

     

     " 그러니까 고독함을 느낄 때가 있잖아요. "

     

    나는 내 발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하며 작게 대답해주었다.

     

     " 저도요."

     

     " 그럴때면, 한도끝도 없이 스스로를 고립시켜요. 살다보면 공감받지 못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 저도 그래요."

     

     " 그래서 사람을 찾았는데,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죠."

     

    남자의 옆모습은 풀이 죽어 발 아래 그림자처럼 녹아내리는 듯 했다.

     

    그 그림자를 피하고 싶었다.

     

     " 우리는 어떤 것 같은데요?"

     

    내가 그의 어깨를 살짝 스쳐 나와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쳐다본 것은 아니었다.

     

    나와 남자는 그 멈춤에 둘 모두 정면의 허공을 가만히 살펴보게 되었다.

     

     " 좋은 것 같은데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며 말하는 것.

     

    그 말을 듣곤 나는 내 오른손으로 조용히 그의 왼손을 잡았다. 곧 잽싸게 손을 피고 다시 사납게 구부려 깍지를 쥐었다.

     

    손끼리의 마찰이 방아쇠를 당겼다.

     

    남자의 손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느낌이었고

     

    심장의 박동이 점점 커져 울려왔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나를 관통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모르지만, 남자가 부들부들 떠는 것 같았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겁이 났음에도

     

    그의 얼굴을 돌아봤다.

     

    나는 손의 긴장을 풀었지만

     

    남자가 손을 놓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는 아주 오랜만에 감정에 동화되어 목 뒤가 타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그 이후로 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마치 주인을 알 수 없는 하얀 안개가 우리를 쓸어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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